영화

올드보이(Oldboy, 2003) : 패턴 전쟁

태태구 2020. 1. 12. 07:39

 무섭다. 15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고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말과 행동들이 두렵다. 차라리 남에 대해 몰랐으면 좋겠을 정도로, 그래서 말할 거리가 없었으면 좋을 만큼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남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상처를 주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sns는 이제 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남의 일 상을 엿보고 화제 삼아 대화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왜곡되고 와전되어 본질을 잃어간다. 우리는 남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대수는 뚫린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사랑을 엿보고 말한 것 하나로 15년 동안 갇히게 되고 같은 행위를 저지르게 되며 처절하게 복수당한다. 신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말 한마디'가 어떻게 퍼져나가고 어떻게 왜곡되며 고통받을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게 되고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된다. 오이디푸스적 금기와 맹목의 숙명, 최면술과 파멸을 기둥으로 구성된 스릴러 장르의 영화라고 소개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장르적 영화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올드 보이]는 그 공간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올드보이의 미술감독이었던 류성희 감독은 이후에도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영화 [아가씨]에서 세계적인 미술감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난색도 한색도 아닌 보라색은 종교적 표현의 색으로서도 많이 사용된다. 근친상간, 복수, 분노, 최면, 후회, 고통 등 수많은 요소를 담는 색으로서는 보라색이 가장 적합했을 것 같다. 또한, 올드보이에는 수많은 패턴이 나온다. 책 [올드보이 백서]를 읽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패턴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턴 자체의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패턴이라는 요소 자체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공간에 이토록 화려한 패턴들이 존재한다. 이런 패턴들로 가득 찬 공간은 왠지 판타지적인 느낌도 난다. 그러면서도 옛날 후진 모텔방 느낌의 현실감도 가져다준다. 신인으로서 '미도'역을 맡았던 강혜정은 지금 김태리와 같이 박찬욱의 손에서 일약 스타로 거듭났다.

유일하게 패턴이 없는 공간이다. 올드보이에선 부자들과 서민을 나누는 기준이 패턴인 것 같다. 미니멀리즘 한 공간에서 부자들만이 할 수 있는 수로가 있다. 약간은 촌스러운 초록색이 이 영화에서 보라색과 더불어 주 색을 이루고 있다.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부분이 [올드 보이]를 상업 영화이면서도 예술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다.

7.5층은 은밀하고 지저분하며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지상이지만 왠지 지하에서 촬영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누구는 이 영화를 '표현주의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표현주의는 연출과 촬영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올드 보이]는 '평균'만 하려고 하며 영화 미술의 가치를 단순히 촬영 공간이라고만 생각하는 감독들에 대한 일침이다. 그리고 영화 미술이 스토리텔링에 어떠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