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를 심각하게 좋아해서, 아니 '좋다'라는 표현을 넘어서 '중독'이라는 수준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게임일 수도, 운동일 수도 있다. 영화 [그랑블루]는 바다에 중독되어 버린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쟈크(쟝 마르 바)에게 잠수는 인생이다. 직업이라는 단어로는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인생의 전부이다. 쟈크는 잠수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바다 깊은 곳에서 다시 눈부신 지상으로 올라가야 할 이유를 찾기가 버겁다고 말한다. 자신이 바다에서 평생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더라도 쟈크에게 바다는 생명 그 이상이다. 이중적 잣대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 남자의 인생과 그를 품은 바다를 그려낸 이 영화는 여전히 80년대의 대표작이자 시대정신이다.
흑백과 컬러로 영화 속 시간을 표현한다. 어릴 적 쟈크가 바라본 바다는 흑백 화면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묘사한다. 그리스 해변 마을의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은 흑백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만족시킨다.
뤽 베송 감독의 어릴 적 꿈은 돌고래 조련사였다. 이루지 못한 꿈을 이 영화에서 제대로 한풀이한다. 바다와 돌고래에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영화의 비주얼은 CG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 클래식한 멋으로서 신선하고 다채롭게 다가온다.
씁쓸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흠인 것 같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인의 걸음걸이를 묘사하고 그 이미지가 허무맹랑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유머로서 표현한다. 전혀 유머스럽지 않았다. 일본인이 보면 상당히 언짢을 것이다.
쟈크에게는 유일한 친구이자 라이벌 엔조(장 르노)가 있다. 쟈크는 자신이 엔조보다 뛰어난 것을 알고 있지만 항상 하수를 자처하다 잠수 대회에서 엔조보다 상수임을 처음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엔조는 사실 쟈크가 자신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엔조는 잠수 대회 이후 쟈크를 인정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계속해서 잠수에 도전한다. 바다는 이런 엔조를 삼켜버린다. 엔조는 삶의 마지막에서야 쟈크보다 더욱 깊숙이, 그리고 오래 바다에 머무를 수 있었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두 캐릭터는 경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선의의 경쟁'을 보여준다.
바다는 위험이자 안식처이다. 적절한 CG와 화면전환은 쟈크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바다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돌고래와 함께 평화로움을 찾는다.
가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다. ‘꿈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쟈크에게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에게 바다는 꿈이자 사랑이며 인생이었다.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바다로 형성된 삼각관계에서 쟈크의 행동이 옳고 그른가를 쉽게 논할 수 없다. 우리들은 어떤 상황이나 행동에 대해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가 있다. 쟈크가 임신한 조안나(로잔나 아퀘트)를 홀로 둔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한들 어느 누가 쟈크의 바다를 판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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