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일 죽을 것 처럼 오늘을 산다'는 말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그만큼 하루하루를 소중히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말인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뼈가 으스러지고 정신이 나갈만큼 하루를 불태우고 싶진 않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나는 그냥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비범한 내일이 온다고 믿는 편이다. 근데 만약 내일, 혹은 길어야 한 달안에 내 삶은 종지부를 찍는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나는 지금과 같이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한 다음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유투브를 보다 잠드는 그런 하루를 보내진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마틴과 루디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마틴은 루디에게 죽은 뒤 천국에선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살면서 한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루디, 그런 루디와 함께 마틴은 자동차를 훔쳐 바다를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이러한 행동은 내일 죽을 것 처럼 오늘 하루가 소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둘은 우연히 병실에서 발견한 데낄라 한병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병원 구석진 한 곳에서 술과 소금, 레몬 그리고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본다. 칼과 포대자루안의 소금, 깔린 레몬은 데낄라 한병에 비해 지나치게 많지만 오늘 이 두 시한부 인생에게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한때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을 적는 버킷리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인생에 의미를 더한다. 내가 적은 수많은 버킷리스트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루디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밤을 선택한다.
이 영화에선 액션신이 자주 나오지만 단 한명의 사람도 죽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틴과 루디의 죽음 이외엔 영화에서 다른 사람의 죽음은 무의미한 것 같다.
두 사람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바다를 바라본다. 어떤 심정으로 바다를 바라봤을 지 가늠해 볼 수 조차 없다. 나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본 경험이 없으니깐. 거친 화면 속 마틴과 루디는 죽기 전, 죽을 힘을 다해 바다를 향한다. 보장된 내일이 없는 삶은 용기있는 오늘을 가능하게 했다. 나도 오래전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매년 새해 다짐을 하고 그 다짐을 다음 해에 똑같이 다짐한다. 오래전 작성한 버킷리스트가 어떤 것이었고 작년에 했던 새해 다짐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유쾌한 서사 속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가슴 한 구석에 작년과 다른 올해,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했던 다짐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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