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든 어디든 인간사회에는 항상 밝고 화려함 그 이면에 어둡고 소외된 것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영화적 소재로서 어둡고 소외된 것들을 다룬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함보다는 어두움이 낯설기 때문에,
다만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어두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둡지 않아서 때문이 아닐까한다. 네오 리얼리즘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를 보면 실제로 소외되고 어두운 사각지대에 몰린 사람들이라고 마치 우리가 상상하는 할렘가처럼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같은 그런 공간에 살진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아름답고 더 슬프고 더 자극적이다.
디즈니랜드 근처 허름한 모텔 '매직캐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미국의 소외계층이다. 그 공간 안에각자만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벗어나고 싶은 지옥과도 같은 곳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즐겁게 돌아다니는 놀이터이다. 다양한 삶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이 이 공간속에서 표현된다. 그리고 . 난색과 한색의 중간인 보라색 건물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션 베이커 감독은 아이들의 시선에 집중한다. 이곳에 사는 자신들이 소외계층이건 뭐건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 가까이 살며 놀고 싶을 때 놀면 그게 행복이고 천국이다. 하지만 이들을 저지하는 것은 어른이고 곧 사회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화면은 다채롭고 아름답다.
노골적이고 비현실적인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디즈니랜드 주변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화면안으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어드벤처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아는 사람은 '어른'이다.
무니의 보호자인 헬리는 돈도 없고 개념도 없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런 헬리는 무니와 동등한 시선에서 무니와 함께 한다. 하지만 헬리는 무니와 같은 아이가 아니다. 무니의 엄마이자 보호자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모든 것을 배제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순수해 보이는 공간 안에서 보이는 것 처럼만이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무지개 옆엔 황금이 있지만 난쟁이 요정이 지키고 있어서 가져갈 수 없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그런 난쟁이를 때려눕히러 가자는 무니와 젠시, 이 아이들의 순수함은 자본주의 속 계층과는 무관하다.
사랑하는 친구들만 있다면 사실 어느 공간이건 아이들에겐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소외계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고 행동이다. 타인의 상황과 행동을 규정짓는 잣대를 부셔버리는, 그래서 이 아이들의 천진함, 순수함, 때 묻지 않은 행동들이 나를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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